외교관의 시계

[대사의 베를린 일기] 정범구 주독일대사
   
포토 | 입력: 2018-12-28 | 작성: admin@admin.co.kr 기자

 

 

 

주독일한국대사관저 앞모습
주독일한국대사관저 앞모습

독일은 이제 온통 크리스마스 축제로 뒤덮여 있다. 이렇게 또 한 해가 간다. 외교관으로 보낸 지난 한 해를 되돌아 본다.

 

얼마 전 재외공관장 회의가 있어 한 주간 한국에 다녀왔다. 전세계에 나가 있는 공관장 181(특명전권대사 115, 총영사 45, 분관장, 출장소장, 타이베이 대표부 등 대표부 인원)이 한자리에 모이는 대단한 행사였다.

 

행사 첫날 만찬 석상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임시정부 초대 외무장관이었던 김규식 선생 말씀을 인용하여, "외교란 남의 장단에 따라 춤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락에 맞춰 해야 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과거 약소국으로 늘 남의 눈치만 봐 왔던 외교에서, 이제 세계 10위권 국가로, 민족의 과제인 한반도 평화 정착과 통일을 추동해야 하는 한국 외교의 체질 개선을 촉구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한국 외교가 감당하고 풀어내야 할 일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외교관 한 사람 한 사람의 역량도 키워야 하고 외교관으로서의 다양한 고민도 필요하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이낙연 총리가 한 말이 매우 인상적이다.

 

재외공관장들과의 오찬 석상에서 이 총리는 "외교관들에게는 3개의 시계, 3개의 시차, 3개의 시각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본국의 시간, 또는 시각, 주재국의 시간/시각, 세계보편의 시간, 혹은 시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평소 그의 해박한 식견과 논리에 감탄해 왔지만 지금 이 말에는 언론인 출신인 그의 예리한 관찰이 그대로 녹아있다.

 

 



 

 

외교관들은 내 나라의 정기와 곡식으로 살과 뼈가 만들어졌다.

 

조상들이 만들어 온 나라를 지키고, 후손들이 행복하게 살아 갈 나라를 물려 주어야 한다. 이런 임무를 갖고, 그러나 외국을 상대로 일을 해야 한다.

 

우리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를 이해하고, 상대방의 말이나 습관, 문화를 잘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무리 명문이고 뜻깊은 선언이라 하더라도 "오등은 자에 아 이천만 조선..." 운운하며 우리 3.1 독립운동의 대의를 세계인들에게 전달할 수는 없다.

 

영어로, 독일어, 불어, 스페인어로, 그것도 그들의 생활감정에 부합하는 언어로 바꾸어 전달할 수 밖에 없다. 늘 본국과 주재국 사이를 오가는 시각과 시차 사이를 건너 다니지 않으면 안된다.

 

현장에서는 때로 두 개의 시각과 시차가 충돌하기도 한다. 양국의 갈등을 해결해야 할 때 각자의 시각 차이가 전혀 좁혀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인류보편의 시각을 차용할 수 밖에 없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정부 책임을 부인할 뿐 아니라 이 문제의 공론화 자체를 강하게 거부하는 일본정부를 향해 "이 문제는 단순히 한일 양국의 과거사 문제가 아니다.

 

'여성에 대한 전시 성폭력'이란 인류 보편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에는 이 3개의 시간이 들어있는 것이다.

 

사진들은 관저의 4계절을 담은 것이다.

 


 

아시다시피 베를린 주재 대한민국 대사 관저는 1960년대, 브란트 총리가 당시 베를린 시장 재직시 시 영빈관으로 구입했던 건물이다. 그래서 건물 곳곳에는 브란트의 체취가 묻어 있기도 하다.

 

2004년 우리 정부가 구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