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부산대총장실서 거행... 민주화시위 고문 후유증 서거후 39년만
고 최종철 열사의 청주고 3학년때 모습.
1980년 당시 민주화시위에 앞장섰다가 계엄군에 끌려가 고문을 받은 뒤 결국 그 후유증으로 서거한 청주출신 고 최종철 열사가 40년만에 부산대 명예졸업장을 받는다.
충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대표 곽동철신부)는 부산대측이 오는 24일 부산대총장실에서 최 열사에 대한 명예졸업장 수여식을 갖기로 했다고 23일 밝혔다.
고 최 열사의 명예졸업장 수여식에는 고인의 가족과 친구, 충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관계자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에앞서 광주민중항쟁 40주년을 맞아 고 최종철 열사를 기리기 위한 방안을 논의해온 충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측은 지난달 4일 부산대측에 명예졸업장 수여를 요청했고, 부산대측은 사업회측의 요청을 받은 뒤 한달만인 지난 3일 명예졸업장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고 최종철 열사와 어머니, 누나.
밀알과 씨알, 간디의 사상과 실천을 존경했던 최 열사는 지난 1958년 아버지 최재홍씨와 어머니 김홍희씨의 3남 2녀중 셋째 아들로 청주시 석교동에서 태어났다. 청주 석교초와 대성중, 청주고(50회)를 졸업했으며, 1977년 부산대 공대에 입학했다.
이후 1979년 부산민주항쟁에 참여했으며, 휴학한뒤 입대를 준비하던 1980년 5월 충북대에서 열린 5월 민주화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5월 6일 시작된 충북대 시위에 참여해 ‘계엄해제’, ‘조기선거실시’, ‘신군부퇴진’을 외쳤으며, 충북대 시위대와 함께 경찰 저지를 뚫고 상당공원까지 진출하는데 가장 앞장섰다.
그러나 아버지의 권유로 자수한 이후 극심한 구타와 고문을 받은뒤 5월 18일 계엄포고령 위반혐의로 청주보안대에 구속됐으며, 그해 8월 대전형무소에 수감됐다.
고 최종철 열사
같은 해 11월 5.18 국가반란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으며, 2심에서 징역 3년을 받았다.
이듬해인 1981년 6월 석가탄신일 특사로 석방됐지만 고문후유증으로 요양치료를 받던 중 9월 1일 심장마비로 서거했다. 9월 3일 그의 시신은 벽제에서 화장돼 인근 산야에 뿌려졌다.
1984년 지역의 민주화운동세력들이 그의 추모비를 청주제일교회에 세웠으며, 지난 2011년 9월에는 30주년 추모식을 거행한 바 있다.
고인은 지난 1999년에 광주민중항쟁 희생자로 국가유공자에 추서됐으며, 매년 9월 1일 그를 기리는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다.

고 최종철 열사 추모비.
이후 지역에서는 1985년 4월 15일 한국가톨릭농민회청주교구연합회,충북기독교농민회, 충북기독청년협의회(EYC), 청주교구가톨릭대학생연합회, 충북민주청년회, 재경 충북민주향우회, (가)문화운동단체협의회 지역의 민주운동 단체 7개와 재경 민주향우회가 뭉쳐 충북민주운동협의회를 출범시켰다.
충북민주운동협의회는 이후 1986년 개헌투쟁, 1987년 6월항쟁의 중심조직으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하는 등 지역 민주화운동의 중심이 됐다.
광주 망월동국립묘지에 있는 최종철 열사의 묘.
곽동철 충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장은 “그는 타협하지 않았고 정정당당했다. 양심과 정의감 때문에 그는 숱한 고문과 고초를 겪으며 목숨까지 잃어야 했다”면서 “그가 불태운 고귀한 헌신은 우리들로 하여금 5.18광주민중항쟁의 진실을 위한 싸움으로 이끌었으며, 항상 우리들을 바로 서서, 전진하게 하는 등대였다”고 추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