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슈타인마이어(Frank-Walter Steinmeier) 대통령

[대사의 베를린 일기] 정범구 주독일대사
   
뉴스 | 입력: 2019-01-23 | 작성: admin@admin.co.kr 기자

정범구 주독일대사(왼쪽)와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
정범구 주독일대사(왼쪽)와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

어제는 독일 대통령궁에서 신년하례회가 있었습니다. 독일 주재 외교사절단과의 자리입니다. 며칠 전 세계핸드볼 선수권 대회 개막전에서 뵈었던지라 개인적으로는 며칠만에 다시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대통령궁과 독일 외교부의 많은 간부들이 도열해 있고, 마스(Heiko Maas) 외교부장관이 옆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대통령께 신년인사를 드렸습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많은 업적 이루시라구요.

그랬더니 웃으면서 하는 대답이 이렇습니다.

"지난번 축구는 졌지만 이번 핸드볼은 우리가 이겼으니 피장파장"이라구요.

슈타인마이어 대통령과는 개인적으로 뵐 기회가 많았습니다. 외교관으로서는 큰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해 부임하자 마자 슈타인마이어 대통령 평창방문을 수행하였고, 무엇보다 지난 6월 27일 대통령 지방순시에 동행하면서 월드컵 한독전을 함께 보았습니다. 

이 때가 참 아슬아슬하고 진땀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슈뢰더 전 총리의 결혼식장에서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했습니다. (슈뢰더 총리 시절 그는 총리 비서실장이었습니다. 그후 외교부장관, 사민당 총리 후보를 거쳐 현재 대통령 직위에 올랐습니다.)

간혹 이런저런 공식행사에서 뵙는 경우 멀리서도 저를 보고 먼저 아는체 해주실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저도 어깨에 힘이 들어갑니다^^

내각책임제 정부형태를 취하고 있는 독일에서 대통령은 국가의전서열 1위의 국가 원수이지만 현실정치에는 개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독일이 당면하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 특히 극우세력 성장에 따른 독일 민주주의의 위기, 다원주의 다자주의의 수호 등, 독일사회가 지켜나가야 하는 가치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래서 대통령 인기는 어느 현역 정치인들 보다 높습니다.

어제 대통령 신년사에서 대통령이 초두에 저를 언급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프린트된 원고에도 제 이름이 들어가 있습니다.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지난 여름 여러분과 함께 지방순시를 가서 여러 즐거운 경험을 하였다. 마침 축구경기가 있어 정대사와 함께 보았다. 결과에 대해서는 더 말하고 싶지 않지만..."

여러 외교사절들의 폭소가 터졌고, 마침 옆에 있던 일본대사는 제게 은근 부러움의 눈길을 던졌습니다.

이렇게 말미를 꺼낸 대통령은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게 스포츠이지만 여기에는 공정한 룰이 있다. 그러나 최근 자국중심주의 위주로 변해가는 국제질서가 종래의 다자주의, 다원주의의 룰을 무시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라는 요지의 말을 하였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올 여름에 다시 외교사절단을 초청하겠다는 약속을 하며 인사를 끝냈습니다.
단 이번엔 축구는 빼고...(Dieses Mal dann, versprochen, ganz ohne Fußb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