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역언론 사주님께 드리는 퇴직기자의 고언

편집국장 '치킨게임'의 패자 보단 판을 새로짜는 승자가 되시길
   
뉴스 | 입력: 2021-09-27 | 작성: admin@admin.co.kr 기자

 

청주의 한 신문사 앞에 걸려 있는 플래카드./소셜미디어태희

  

[권혁상 전 충북인뉴스 대표이사]


적어도 2년은 지난 것 같습니다. 청주 무심천 흥덕대교를 건너 운천동 사거리 주변에 민망한 플래카드가 내걸린지..."00일보 000은 급여, 퇴직금, 수당을 지급하라!" 지날때마다 월급장이 기자들도 얼굴이 화끈한데 같은 언론사주 입장에서 얼마나 울화가 터지십니까? 신문 발행인의 이름이 회사앞 백주대로에 2년째 펄럭이고 있는 현실, 이 정도면 소위 'CEO리스크'라 해도 과장이 아닐겁니다.

 

 

권혁상 전 충북인뉴스 대표이사

 

 

 

하여, 제가 마침 월급장이 기자를 그만둔 처지가 돼 감히 언론사주님(?)들께 편지형식의 고언을 드리고자 합니다. 코로나 사태까지 겹친 역대급 위기에 처한 지역언론에 무슨 쓴소리냐고 짜증부터 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위기가 '이 또한 지나갈' 한시적 위기가 아니라는 점도 잘알고 계실겁니다. 중앙지 위주의 신문시장에서 힘겹게 버텨온 지역신문은 인터넷신문·유튜브 방송의 등장으로 벼랑끝에 서게 됐습니다. 지역민방 또한 종편 다채널 시대를 맞아 자립경영 기반이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제 쓴소리가 지역언론 사주들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직시하고 돌파구를 고민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지역언론 투자 제대로 하셨습니까?


제가 정한 지역언론 사주는 청주에 본사를 둔 일간신문 5곳과 민간방송사 1곳의 대주주를 말합니다. 이른바 지역의 전통(legacy)미디어 이자 주류언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거만큼의 위상은 아니겠지만 지방자치시대의 첨병으로 나름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 영향력이 바로 사주들이 언론사업에 자금을 투자한 이유일 겁니다.


하지만 많은 지역언론 종사자들은 (모기업을 겸영하는)사주들의 총량적 사업규모에 비해 언론투자가 미흡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민간방송사는 소유지분 제한 규정에 따라 대주주 지분이 30%를 넘지 못합니다. 일간신문의 경우 대주주의 실제 투자액은 최하 10억 미만~최대 20억 미만으로 추정됩니다. 고질적인 은행부채를 해결하지 않고 그대로 인수해 구성원들을 실망시키기도 했습니다.

 

 

기자 이미지./망고보드

 

한 해 수백억대 매출을 올리는 모기업을 운영하는 사주들은 지역언론사의 열악한 급여를 선도적으로 개선해 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요? 해당 사주들이 잘알고 계실 겁니다. 결국 지역언론의 대주주 지위를 얻기 위해 한번의 배팅(?)은 했지만 지속적인 투자는 외면했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이에대해 언론사주로서 누리는 기득권이 없는데 어떻게 투자만 요구하느냐고 반문하실 수 있습니다. 한때 지역 주류언론사 대표들은 정기적 모임을 유지하며 도지사, 시장 등과 자연스럽게 회동했습니다. (일간신문의 경우 기자출신 대표이사가 참가했다가 느닷없이 사주 회장님(?)들로 바뀌어 뒷말이 나오기도 했죠) 특히 기업을 운영하는 사주들이라면 자치단체장, 공공기관장들과 대등한 만남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잘 아실 겁니다.


최소한 언론사주라는 신분 때문에 모기업 운영에 부당한 처분이나 불이익을 받은 적은 없지 않습니까? 심지어 어떤 사주는 청주시의 인허가가 늦어지자 현직 시장에게 전화해 위협성 폭언까지 한 경우도 회자되더군요.

 

공익적 사기업, 잊지 않으셨죠?


언론의 형태는 사기업이지만 기사라는 공공재 상품을 생산하는 공익적 기업입니다. 공익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민주적 개방적 운영이 전제되야 합니다.


무엇보다 언론의 속성을 아는 전문경영인(대표)과 기자들의 지지를 받는 편집국장이 필요합니다. 편집국장 직선제는 한때 옛 충청일보가 도입한 적이 있지만 현재는 5개 일간지 모두 사주가 내세운 대표가 낙점하고 있습니다.


창원에 본사를 둔 경남도민일보의 경우 사장공모제를 통해 회사를 성장시킨 전국의 모범적인 지역신문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도민공모주로 설립돼 대주주 언론사와 소유구조는 다릅니다) 하지만 충북 일간지의 경우 언론인 출신 대표가 아닌 경우가 많았습니다. 옛 충청일보는 향토 기업인을 내세웠다가 안기부 청주지부장 출신을 영입해 노조와 큰 충돌을 빚었습니다.

 

 

 

경남도민일보 홈페이지.

 

 

 

현재도 기업인이나 경찰 간부 출신 등을 대표로 영입해 논란이 된 신문사가 있습니다. 모 일간지는 사주의 아들이 편집국 간부로 일하고 있고 모 방송사는 현직 단체장의 아들이 경력직 입사과정에서 내부갈등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같은 불통의 인사는 내부 구성원들의 화학적 결합에 결정적인 장애요인이 됩니다. 결과적으로 상호협력적 상품(기사 컨텐츠)의 질을 저하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에서 세계 40여개국을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는 '뉴스 신뢰도' 부문 최하위권으로 나타났습니다.


언론종사자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기레기'란 표현이 무색한 지경입니다. 특히 총 2006명의 한국인에게 지난주에 포털 등 온라인 매체 말고 어떤 오프라인 매체(TV, 라디오, 신문)를 통해 뉴스를 접했는지를 물어본 매체별 뉴스이용항목이 눈길을 끕니다. 지역 신문은 KBS, 조선일보 등 16개 오프라인 매체에 포함됐는데 이용률은 8%로 최하위를 기록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뉴스 신뢰도부문입니다. 지역 신문에 대해 믿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35%로 이는 조선일보, 경향신문과 함께 15개 신문방송 가운데 공동 꼴찌수준입니다. 지역 뉴스에 대한 신뢰도가 낮고 접속률까지 떨어지는 우리 지역 언론의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매체간 합종연횡은 절대 불가능할까요?


사실 지역언론의 '총체적 위기'란 말은 이미 10년전부터 나돌았습니다. 장차 지상파 방송의 텃밭이 줄고 종이신문의 종말이 올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인력부족, 자금부족 등의 이유로 별다른 대처를 하지 못했습니다. 갈수록 말라가는 기득권의 우물에 기대 현상유지에 안간힘을 써왔을 뿐입니다. 엎친데 덮친 격의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이젠 미래를 말할 수 없는 혼돈에 빠지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먼저 쓰러지느냐는 '치킨게임'에 명운을 걸고 현상유지에만 올인하시겠습니까? 상대는 하나가 아닙니다. 순서대로 쓰러지다보면 최종 생존자도 결국은 패배자가 될 것입니다. 치킨게임 와중에 링밖에서 어떤 거인이 나타나 막판 싸움을 평정할 지도 모르니까요.


지역언론 '총체적 위기론'이 나돌면서 일부에선 언론사간의 합종연횡에 의한 구조조정을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충북이란 울타리안에 3개 지상파 방송사와 5개 일간신문이 상호공존할 수 없는 게 자명해진 상황에서 다른 대안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상파 방송의 합종연횡은 걸림돌이 많겠지만 지역신문의 구조조정은 사주들이 결심하면 가능하다고 봅니다.


자신들의 지분을 N분의 1로 나누고 대주주가 없는 공동경영제에 합의하면 됩니다. 실제로 수년전 지역 일간신문간의 통합논의가 물밑에서 있었지만 통합이후 대주주를 내가 맡아야 한다는 주장에 막혀 물거품이 됐습니다.


가장 바람직한 언론사의 전형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것이고 한발 더 나아가 경영과 편집이 분리된 구조입니다. 현 사주들이 통합언론사의 개별 주주로 이사회에 참여하고 전문경영인을 공모하면 됩니다.

 

 

 

뉴스타파 후원화면

 

 

지역의 덕망있는 외부인사들도 참여시킨 사장추천심사위원회를 통해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영입된 전문경영인 대표가 편집국장 직선제를 통해 편집권 독립을 함께 지켜가는 것입니다. 이같은 대의명분으로 지역신문 시장을 재편한다면 새로운 '엔젤투자자'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같은 무소유 언론형태에 대해 "주인없는 회사가 제대로 굴러 가겠어?"라고 반문하실 수 있습니다. 똑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15년째 노동자자주관리기업으로 뿌리내린 회사가 청주 '우진교통'입니다. 직원조합원들이 경영 주체가 돼 동업계에서 가장 큰 경쟁력과 발언권을 가진 자타공인 1위 업체로 우뚝 섰습니다.


글머리에 사주들의 '언론사업 투자'라고 표현했지만 개인적으론 사회적 기부 성격이 짙다고 봅니다. 제가 속했던 비주류 언론사는 소유와 경영이 확실히 분리됐기 때문에 그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현재 지역일간지 사주 2명은 수십억대의 출연금을 기부해 이미 공익재단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재단설립 취지대로 마음 먹기만 하면 기존 지역신문 시장을 충분히 재편할 수 있습니다. 대주주 지위를 내려놓고 후원주주로 한발짝 물러나면 완전체에 가까운 공익적 언론법인을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독자의 신뢰를 잃고 치킨게임에 허덕이는 언론사의 대주주 보다 지역의 건강한 목소리로 박수받는 언론사의 후원주주가 더 자랑스럽지 않을까요. 박수받은 언론사가 생기면 제주도처럼 지자체가 중심이 돼 지역언론재단을 설립하고 근본적인 지원시스템을 갖출 수도 있습니다. '위기가 곧 기회'란 말은 발상의 전환을 얘기한다고 봅니다

 

사주님, 아무쪼록 언론사업 참여를 투자가 아닌 기부라고 발상의 전환을 해보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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