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용기를 내어 소리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학생의 눈높이로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 9월 7일, 충북여중 SNS계정은 새암축전 중 발생한 불법촬영 사건에 대해 학교 측의 적극적 조치와 불법촬영의 심각성을 비롯해 성인지감수성을 각성하길 바라며 개설되었다. ● 당시 위 계정이 교내 재학생들에게 퍼지고 교직원 회의에서 발의되어 피해학생들의 입장에서 원활하게 해결될 거라 믿었다. ● 그러나 단순 불법촬영으로 종결되어 지면서 학생들의 공분이 일기시작 했고, 재학생 간의 갈등은 있었지만, 불법촬영에 관한 사건을 넘어 ‘성폭력 공론화’로 커져갔다. ● SNS계정주는 9월 8일부터 재학생과 졸업생을 대상으로 포털 폼을 이용해 성폭력 피해 사례제보를 받았다. 설문조사 결과는 41개이며, 내용과 시기가 불분명한 것을 제외하면 30여개에 이른다. 학생들이 가해자로 지목한 교사 수는 총 9명이고, 이 중 서원재단에 속하지 않은 교사 1명, 직위해제 교사 2명, 퇴임교사 1명이 포함되어 있다. ● 계정주는 9월 10일과 11일 학교 흐름을 파악한 후에 바로 공론화를 진행하려 했다. 그러나 학교는 발 빠르게 전체 조회와 공청회를 열어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의견 수렴함 설치와 교직원 언행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 두 가지가 한 순간에 개선될 수 없으니 2주간의 유예기간을 두기로 결정했다. 학교는 조치를 취했고, 계정주는 예정대로 공론화를 진행했다간 계정주가 2차 피해를 입기 좋은 조건이라 판단했다. ● 9월 14일 계정주는 ‘교감이 공청회 당일 약조한 부분을 명확히 해야 한다.’ 생각했다. 계정주는 유예기간을 9월 10일부터 9월 21일까지로 정하였고, 의견수렴함 설치 날짜와 관리자 지정, 공대위(교내 성폭력 공론화 대책 위원회) 선발과 활동 내용 등을 포함,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전국에 공론화하겠다.’라는 의사를 요구서에 명시했다. 요구서는 작성 후 트위터에 에버노트를 통해서 공유했다. 공청회 이후 계정주는 학교 측이 적극적으로 요구서 내용을 시행하도록 건의함을 통해 독촉했고, 2차 가해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계정 활동을 스스로 잠정 중단하게 되었다. ● 공대위 명단은 서면으로 교무실 옆 건의함을 통해 학교 측에 전달했지만, 학생이 이 문제에 참여하고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환경은 조성되지 않았다. 9월 10일 공청회에서 약조된 의견수렴함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성·언어폭력, 교내에서 느낀 불만사항을 기재해 고발하는 장치이다. 의미를 가지는 것은 의견수렴함을 학생회, 즉 학생들이 관리하고 운영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설치된 이래로 단 한 번도 학생회나 공대위가 의견수렴함을 열어 확인하지도 못했고, 11월이 돼서야 교감선생님이 관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 10월 1일 경찰의 전수조사를 마지막으로 교내에서는 ‘교내 성폭력 공론화 운동’이 교사나 학생들 간에 공공연하게 언급되지도 않았고, 계정 활동을 멈춘 상태여서 관심도는 점차 떨어졌다. 계정주가 누구인지 직접 밝히는 순간 2차 가해는 다시 시작될 것이고 어떤 방책도 없어 더 이상의 무엇도 진행할 수 없는게 현실이었다. 몇몇 학생들이 트위터에서 스쿨미투 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의 계정을 다른 SNS에 공유하면서 사이버불링이 발생했다. 재학생 사이에서 ‘이 계정 누구야.’라며 색출하려는 움직임이 9월 7일부터 약 일주일간 존재했고 여기에 대해 학교는 주의를 줄뿐 제지하지 않았다. ● 11월 졸업생들 사이에서 학생들이 지목한 가해교사의 탄원서가 돌았고, ‘계정주’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교내에서 공론화 운동이 와해된 상황에서 계정주가 주목을 받으면 일이 산으로 갈게 판단했고, 고등학교 진학에 영향을 미칠 게 분명했다. ● 이런 상황에서 계정주가 다시 용기를 내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학생의 눈높이로 바뀐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학생과 교사 간의 수직적인 구조, 구조 속에서 형성되는 권력관계에는 한 발짝도 다가가지 않는다. 오히려 관습적으로 행해져 와 고착화 된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학생들에게 ‘우린 시도하고 있다.’라는 변명을 마련할 뿐이다. ● 교육3주체라고 말하면서 학교 운영에 학생을 포함시키진 않는다. 학교에서도 학교 밖에서도 청소년인 학생은 ‘미성숙한 존재’로 여겨져 공식적인 발의나 의견 제시를 할 수 없고, 문제 해결의 참여를 요구 했을 때 학교는 ‘아직 아이들 전체적인 수준이 향상되지 않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는 말도 선생님들이 만들어 낸 말인 것 같다. ● 학생의 날, 서울에서 열린 스쿨미투 집회에서 충북여중 공론화 계정주의 발언문이 대독되었다. 대다수의 스쿨미투 피해자가 익명성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교내에서도 학교 밖에서도 가장 불리하고 불안한 위치에 서있기 때문이다. 그 예로 사건이 있던 9월 “떳떳하면 직접 나와서 얘기해.”라는 말을 다른 학생에게 들었다. 지금의 상황에서도 2차 가해에서도 보호받을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적극적인 해결 방안도 모색되지 않는데 자신의 신상을 밝히는 건 상상할 수 없는 두려움을 가져온다. 익명성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빠른 시일 안에 우리 학교가, 우리 사회가 피해자가 당당하게 두려움 없이 직접 발언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 우리가 재단을 바꾸고, 학교 전체를 바꿀 수 없다는 거 안다. 사립재단 내에서의 문제점이 분명하게 있는 것 같다. 재단이 바뀌어야 학교가 바뀌고, 학교가 변해야 교사도 변한다.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당사자는 재단과 교육청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 이에 충북여중 SNS계정주는 교육청과 서원재단에 학생으로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요구한다. - 하나. 성폭력 가해 교사 처벌을 강화하고 학생들에게도 투명하게 공개하라. - 하나. 성폭력 가해 교사에 대한 징계를 내릴 때 외부 전문가를 반드시 포함시켜 진행하라.
- 하나. 피해학생 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이고 철저하게 2차 가해를 예방하라.
- 하나. 성인지감수성을 갖추기 위한 정기적인 페미니즘·젠더 교육을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실시하라.
- 하나. 무기명 전수조사를 통해 피해자 중심의 실효성 있는 성폭력 대책을 마련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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