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자 반성문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뉴스 | 입력: 2021-10-01 | 작성: admin@admin.co.kr 기자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처음부터 기자를 원한 건 아니다. 졸업 후 공적 기관에 근무하다가 수습시절 이곳 출입기자와 다툰 게 계기가 됐다.


내가 맡은 업무의 자료를 요구하는 그에게 자료를 보여줄 의무가 있냐고 따지다가 임원에게 불려가 혼쭐난 게 기자에 대한 구체적인 첫 인식이었다.


결국 사표를 쓰고 옛 충청일보에 입사하여 지금까지 왔다. 하지만 시작은,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확고한 신념보다는 취업의 개념이었음을 고백한다.


때문에 초년병 시절엔 그저 부딪히는 것으로 나를 내세우려 했다. 내근을 하면서는 마침 80년대 중후반의 언론자유화 흐름에 편승해 이지(理智)보다는 행동(行動)의 이미지로 선배들의 눈에 들었고 외근을 시작하고부터는 역시 기본보다는 의욕의 취재에 익숙해졌다.

 

이의 합리화를 위해 기자는 직관이 뛰어나야 한다고 어설픈 철학을 펴던 시기다. 지금 생각하면 마지막까지 현장과 팩트에 천착해야 하는 취재 윤리에 소홀했음을 인정한다.


비판과 감시를 생명으로 하는 기자에겐 그에 걸맞는 논리의 무장은 당연하다. 안 그러면 깊이없는 기사의 남발로 매너리즘에 빠지기 십상이다.


독서와 공부에 대한 절박함을 수없이 느끼면서도 이제껏 결연한 실천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시간을 쪼개 학위에 도전하는 동료들이 존경스럽고 부러웠다. 독서라고 해 봤자 이것 저것 집적거리는 잡독(雜讀)에 불과했고 공부는 차라리 삶과 현장에서 터득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겠다며 자위하는 것으로 다스려 왔다.

 

 

그러나 다행히도 좋은 기사, 좋은 글은 머리보다는 경험에서 나온다고 확신하고 있고 또 이를 후배들에게 자신있게 말하게 됐다. 그래도 어느 한 분야에 최고 전문가가 되지 못한 것은 후회스럽다. 사회의 간만 보다가 세월을 보냈다는 원망마저 든다. 뉴미디어의 출현등 언론계에도 첨단이 판치는 지금, 유독 아날로그를 고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내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역시 기자의 보람은 갖은 노력을 기울여 특종과 차별화된(단독) 기사를 완성하고 이를 음미(?)하는 것이다. 기사를 본 이들로부터의 단순한 반응일 수도 있고 당국의 정책과 시책에 대한 시정과 수정이 피드백으로 돌아오는 것일 수도 있다.


한 참 때는 비판기사에 협박이 가해져도 반가웠다. 문제는 이를 대하는 나의 태도에 우월적 오만은 없었을까 하는 뒤늦은 자책감이다. 과정은 애써 외면하며 결과만을 놓고 펜을 휘둘렀다. 그러니 기사는 실적으로 포장됐을지 몰라도 대안으로서의 의미있는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기자생활의 가장 큰 긍지는 2002년 이른바 충청리뷰 검찰사태때 가졌다. 역설적이게도 나로선 언론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다. 후배기자가 인신구속을 남발하는 검찰을 향해 비판기사를 쓴 게 화근이 됐다.


당시는 지방언론의 검찰 비판은 금기와도 같았다. 충청리뷰를 없어져야 할 신문으로 규정한 검찰은 전격적인 발행인 체포, 구속에 이어 무려 백여명에 달하는 광고주에 대해 탄압수사를 벌였고, 이에 비상체제를 가동하며 철야농성을 벌이면서도 신문제작은 멈추지 않았다.


지역 시민단체와 연대해 과거 동아일보 사태를 연상시키는 백지광고 투쟁을 벌였고 서울 대검찰청으로도 상경해 시위를 벌였다. ‘청주는 지금 검찰공화국!’등 당시 신문의 표지 제목을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가 송연해진다. 시골 언론의 외로운 분투가 얼마나 가상했던지 전국에서 격려가 쇄도했고 중앙의 메이저 언론들도 사설로써 힘을 보태줬다.

 

 

결과는 쌍방의 상처, 그리고 화해로써 정리됐지만 이 사건에 대해서도 역시 후회와 자기반성을 숨기지 못하겠다.


권력의 전횡에 맞선 언론의 분기탱천이었지만 너무 현상과 감정에만 치우쳐 일을 벌였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 때 검찰의 구조적인 문제, 즉 문재인 정권에서 국가의 최대 화두가 되고 있는 검찰개혁까지 염두에 두고 대응했다면 20년 전에 이미 지금의 의제를 선점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충청리뷰는 다름아닌 무소불위 검찰주의의 먹이감이었고 이를 극복하려는 기자들의 싸움은 참으로 지난했다. 얼마나 신념을 다했던지 사태가 끝나고 나서는 이제 기자로서 여한이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취재 일선을 떠난 지금, 기자라는 직업이 자꾸 더 두려워진다면 무엇 때문일까. 대책없이 커지고 있는 언론의 진영논리와 포퓰리즘, 그리고 그 어느때보다도 고조되고 있는 국민들의 언론불신, 이런 것을 고민할 때마다 비록 직업이지만 그래도 기자는 아무나 해서는 안 되고 또 아무나 되려고 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을 다시 곧추세우게 된다.


기자에 대한 직업관과 인식이 과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달라졌어도 이젠 구문일망정 사회의 목탁, 감시견(watching dog)으로서의 책임감은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 바로 이 것이 아직도 국민들이 떠올리는 기자의 숙명이 아니겠는가.


이런 상념이 혼재될 때마다 종종 산을 찾는다. 틈 나는대로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지역 언론계의 산우(山友), 이봉표(전 충북일보) 함우석(충북일보) 권혁상(전 충북인뉴스) 신병관(MBC충북) 조상우(청주방송), 이들이 새삼 고맙다.       

 

* 이 글은 충북언론인클럽이 최근 발간한 '충북언론' 창간호에 실린 글입니다. 저자의 허락을 얻어 게재합니다.